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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디지털 유산 개념 및 정책

각국 정부의 디지털 유산 정책 비교 - 미국, 유럽, 한국

사망 후 남겨진 계정과 데이터, 나라마다 접근 방식이 이렇게 다르다!

 

1. 디지털 유산이란 무엇인가? – 글로벌 기준은 아직 없다

[디지털 유산, 정책 부재, 글로벌 표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삶의 대부분을 기록한다. 이메일, 클라우드, SNS, 유튜브, 블로그, 온라인 뱅킹, 암호화폐 지갑까지 — 사용자의 삶과 재산은 점차 인터넷 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자산은 사망 이후에도 온라인에 남아 있으며, 가족들이 계정에 접근하거나 콘텐츠를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각국의 법과 제도가 이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글로벌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재산’으로 볼 것인가, ‘개인정보’로 간주할 것인가, 혹은 ‘계정 사용권’으로 제한할 것인가에 따라 처리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플랫폼마다 사후 정책이 다르고, 국가별로 상속법 적용 범위가 상이하다 보니, 사망자의 디지털 흔적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2. 미국의 디지털 유산 법제화 – RUFADAA로 정리된 상속 구조

[미국 디지털 자산 상속법, RUFADAA, 계정 접근권]

미국은 디지털 유산 문제에 가장 먼저 대응한 국가 중 하나다. 2015년, 미국의 통일법률위원회는 RUFADAA(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라는 디지털 자산 상속법을 마련했다. 이 법은 현재 미국의 50개 주 중 47개 주에서 채택되어 시행 중이다.

이 법의 핵심은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법적으로 지정된 대리인(예: 유언 집행자)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구조다. 단, 계정 주인이 생전에 데이터 공유를 명확히 허용했거나, 유언장에 관련 내용이 포함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주요 글로벌 플랫폼의 사후 계정 처리 시스템(예: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과도 연계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RUFADAA는 각 주별로 채택 방식과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적용이 어렵고, 플랫폼의 약관이 우선 적용되는 경우도 있어 실제 계정 접근은 여전히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법적 기반 위에 디지털 유산 상속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3. 유럽의 디지털 유산 접근 – GDPR과 프라이버시 중심 모델

[유럽, GDPR, 개인정보 보호, 사망자 계정 제한]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지역이다. 2018년 시행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데이터뿐 아니라 사망자의 디지털 흔적에 대한 접근에도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한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사망 이후 개인정보 보호의 연장선으로 간주한다. 즉, 고인의 계정이나 이메일, 사진, 문서 등에 대해 유족이 접근을 시도할 경우,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거부되는 경우가 많다. 단, 일부 국가는 예외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2016년 ‘디지털 유산 관련 법’을 제정해, 사용자가 생전에 사후 처리 방법을 지정하도록 하고, 그에 따라 유족의 접근을 허용한다. 독일도 2018년 연방대법원 판례를 통해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유족에게 상속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아직 유럽 전체에 통일된 기준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디지털 유산의 상속은 법보다 플랫폼의 약관에 의존하고 있고, GDPR의 엄격한 적용으로 인해 유족의 접근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4. 한국의 현주소 – 법적 정의 없는 플랫폼 위주의 대응

[한국 디지털 유산 법제 미비, 개인정보보호법 충돌, 플랫폼 의존]

한국은 디지털 기술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제도적 정비는 매우 미흡한 상태다. 민법 제1005조는 상속 범위를 “재산”으로 규정하지만, 디지털 자산이 여기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 결과, 사망자의 계정은 대부분 카카오, 네이버, 토스, 웨이브 등 각 플랫폼의 내부 약관에 따라 개별적으로 처리된다. 예를 들어, 유족이 카카오 계정을 삭제하려면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요청자의 신분증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그 계정에 접근하거나 데이터를 열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네이버도 비슷한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계정은 삭제 요청만 가능하며, 메일이나 클라우드 콘텐츠는 유족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이처럼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강력하게 적용되는 구조이면서도, 디지털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보장하는 법이 없어 사망자 계정은 ‘삭제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이로 인해 유족은 고인의 사진, 기록, 유료 서비스 내역, 수익 자산까지 모두 상실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5. 디지털 유산의 미래, 국제적 기준이 필요하다

[디지털 유산 법제화, 국제 협력, 생전 정리 필요성]

디지털 유산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되고 있으며, 단지 정보가 아니라 기억, 정체성, 재산, 인간관계까지 아우르는 자산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제 사회는 국가별 상이한 입장과 플랫폼의 자체 기준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각국 정부가 공동으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정의와 법적 상속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생전에 설정할 수 있는 유언장 기능, 계정 관리자 지정 기능을 법제화하고, 플랫폼은 사용자가 명확하게 의사를 남길 수 있도록 사전 동의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스스로 생전에 계정 목록을 정리하고, 가족과 공유하거나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디지털 유산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인식의 문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정리하고 대비하지 않는다면, 사망 이후에도 남겨진 계정은 유족에게 정리되지 않은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나라 별 디지털 유산 정책
각 나라 별 디지털 유산 정책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