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 새로운 직업의 탄생 배경

1. ‘디지털 유산’이란 무엇이며, 왜 관리가 필요한가?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개인이 생전 생성한 디지털 정보 중, 사망 후에도 남아있는 모든 기록과 자산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경제적, 법적, 정서적 가치를 가진 디지털 형태의 자산이다. 대표적으로는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SNS 계정, 블로그, 인터넷 게시글, 유료 구독 서비스, 온라인 게임 아이템, NFT, 암호화폐, 유튜브 채널, 수익형 콘텐츠 등이 포함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자산이 실제 자산처럼 상속이나 이관의 대상이 되며, 때로는 수천만 원, 수억 원 이상의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자산들은 대부분 분산되어 있고, 보안 수준이 높아 사망자가 아닌 타인이 접근하거나 정리하기 매우 어렵다. 플랫폼마다 계정 정책, 삭제 방식, 접근 권한이 다르며, 특정 계정에 접근하기 위해선 고인의 명의 인증이나 사망 확인 문서, 법원 판결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여기에 암호화폐 지갑의 복구 구문처럼 ‘정보를 모르면 복구 불가능한’ 구조도 많다.

즉, 디지털 유산은 실제 존재하되, 정보가 없으면 아무도 건드릴 수 없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복원도 불가능한 ‘고위험 자산’이다. 이러한 복잡성과 고립성 때문에, 이제는 디지털 유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설계해 주는 전문 직업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란 누구인가?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는 말 그대로,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정리, 보호, 이관, 또는 삭제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망 전 혹은 사망 직후를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고인이 보유한 디지털 자산의 전체 목록을 파악하고 분류한다. 이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 클라우드 문서, 영상, 이메일, SNS 콘텐츠, 유료 콘텐츠 플랫폼, 구독 서비스, 온라인 포인트 등이 포함된다.

둘째, 플랫폼별로 상속이나 삭제, 이전을 위한 절차를 안내하거나 직접 대행한다. 예를 들어 구글의 ‘사망 계정 관리자’ 기능,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설정, 애플의 디지털 상속자 설정 등은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셋째, 고인의 의사를 반영한 디지털 유언장 작성을 지원하고, 특정 파일이나 계정의 공개·비공개 여부를 가족과 조율한다. 이러한 작업에는 감정적 고려와 법률적 판단이 동시에 필요하다.

넷째, 가족이나 유족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접근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기술적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며, 해킹, 사기, 사생활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 직업은 단순히 기술적인 작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법률, 보안, 상담, 데이터 복구, 그리고 정서적 케어까지 아우르는 복합 전문직이며, 특히 고령화 사회와 디지털 자산 보유 증가 시대에 맞춰 더욱 주목받고 있다.

 

• ✅ 가상자산의 상속 절차 안내 및 문서화
• ✅ 계정 정리: 이메일, 클라우드, SNS, 포인트 등 정리
• ✅ 디지털 유언장 작성 및 보관 대행
• ✅ AI·메타버스 아바타 관련 윤리 설계 자문
• ✅ 가족을 위한 디지털 상속 설명서 작성
• ✅ 사망자 콘텐츠 삭제/보존/이전 업무 수행

 

디지털 유산 전문 관리자

3. 왜 지금 이 직업이 생겨나고 있는가?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라는 직업은 기술 변화와 사회 구조의 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친 배경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디지털 자산의 보편화다. 과거에는 인터넷 공간에 남는 흔적이 단순한 커뮤니티 글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암호화폐, NFT, 유튜브 수익, 메타버스 부동산 등 디지털 기반 자산이 실질적인 경제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암호화폐는 중앙 통제가 없고, 사망자의 지갑 주소와 복구키를 모르고선 영원히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생전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둘째, ‘디지털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다. SNS를 통한 추모 게시물, 온라인 부고장, 디지털 묘비, AI 챗봇으로 구현된 고인의 인격 등 죽음 이후에도 디지털 세상에서 ‘존재가 지속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유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고인의 의사와 다르게 데이터가 방치되거나 왜곡되어 사용되는 위험도 존재한다.

셋째, 디지털 프라이버시와 보안 문제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이메일 계정이 해킹되어 스팸 발송에 이용되거나, 구독 서비스가 자동결제로 유지되는 상황, SNS에 남은 게시글이 왜곡된 채 퍼지는 상황 등은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이처럼 죽은 후에도 정보가 살아 있는 시대에는 그 정보의 생애 주기를 설계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4. 실제 사례로 보는 전문가의 역할

실제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의 역할이 가족의 고통을 줄여준 사례도 존재한다.

✔ 사례 1: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청년의 SNS 정리

한 30대 남성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가족들은 고인의 인스타그램, 유튜브, 클라우드 사진 계정 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업체에 의뢰했다.
전문가는 고인의 이메일, 휴대폰 이력, 생전 메모 등을 바탕으로
SNS 계정을 추적하고 정리한 후,
‘디지털 추모 앨범’을 만들어 가족에게 제공했다.
가족들은 감정적으로 큰 위로를 받았고, 사생활 유출 우려도 없앴다.

✔ 사례 2: 고액 NFT 보유자의 생전 대비

한 콘텐츠 창작자는 NFT 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생전에 디지털 유산 전문가를 통해 유언장과 복구 계획을 설계했고,
사망 후 가족은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지갑 접근 코드와 토큰 이전 계약서를 통해 자산을 안전하게 상속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문가의 역할은 단순한 기술 지원이 아니라,
죽음을 둘러싼 디지털 혼란을 예방하고 감정적, 법적 갈등을 줄이는 일이다.

 

5. 직업의 미래와 우리가 준비할 것들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직업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화될수록, 사망 이후 남겨지는 정보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또한 1인 가구의 증가, 고령화, 해외 거주자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나면서 디지털 자산을 가족이 아닌 제삼자에게 맡기거나 상속하는 경우도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 전문가가 단순히 상속 대행자가 아닌, 디지털 삶을 설계하고 조정하는 **‘데이터 생애 주기 관리자’**로 발전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는 ‘디지털 에이징 컨설턴트’, ‘디지털 자산 상속 플래너’와 같은 직업군이 자격화되고 있으며, 변호사, 세무사, 장례업계와 협력해 복합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 개개인도 이제는 ‘디지털 유산은 아직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해선 안 된다. 내 계정, 내 자산, 내 기록은 내가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면 누구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따라서 나의 클라우드 계정, 이메일, 가상화폐 지갑, SNS 사용 내역을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 함께 디지털 유언장 또는 전달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디지털 유산 관리 전문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죽음을 정리하는 방식도 디지털로 진화했고, 그 과정에 기술적, 윤리적, 법률적 복합성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조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삶뿐 아니라 나의 ‘디지털 흔적’까지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할 시대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내가 직접 결정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