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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디지털 유산 개념 및 정책

AI로 자동 작성되는 디지털 유언장의 위험성과 가능성

디지털 시대, 유언장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사망을 맞이하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남겨지는 유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재산 외에 이메일, 암호화폐, SNS 계정, 온라인 콘텐츠 등 디지털 형태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디지털 유언장’이라는 개념이 빠르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유언장을 자동으로 생성하거나 갱신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유언장의 개념을 법적 문서에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가능한 디지털 계약’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실현 가능하고, 안전하며,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이 글에서는 AI 기반 디지털 유언장의 개념과 발전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내포한 위험성까지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AI 유언장의 등장 배경과 기술적 구조

AI로 유언장을 자동 생성한다는 개념은 단순히 유언장을 타이핑해 주는 도구 수준이 아니다. 최근에는 사용자의 디지털 행위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수혜자 정보를 연계하여 유언 내용 자체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이 개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암호화폐 보유 정보, 구독 중인 디지털 서비스, 가족관계 정보, 클라우드에 보관된 사진·문서 등을 종합하여 ‘생전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한 뒤, 이를 근거로 자산 분배 안을 제시하는 형태다. 여기에 GPT 기반의 자연어 생성 기술을 접목하면, 단순한 명령만으로도 복잡한 유언장을 빠르게 완성할 수 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이미 ‘AI 유언장 API’를 개발해 변호사 없이도 유언장 작성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이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법률적으로 유효한 문서로 인정받기 위해선 법원의 검인, 공증 절차, 생체 인증 연계 등의 다양한 요소가 보완되어야 한다. 자동화는 가능하지만, 법적 구속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큰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가능성 – 디지털 유산 시대의 현실적 해법

디지털 자산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AI 유언장은 몇 가지 실질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실시간 업데이트 가능성이다. 전통적인 유언장은 작성 이후 변경이 어렵고, 수정할 경우에도 다시 공증이 필요하다. 반면 AI 기반 시스템은 사용자의 디지털 행동을 기반으로 자산 목록을 자동 갱신하고, 자산 이전 대상도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다.

둘째는 접근성과 비용 절감이다. 전문 변호사를 통해 유언장을 작성할 경우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지만, AI 기반 시스템을 사용하면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복잡한 자산이 없는 일반 사용자에겐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는 국가 간 디지털 유산 이전을 고려한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AI는 다국어 처리와 국제법을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국외 거래소나 해외 서버에 보관된 디지털 자산까지 포함하는 유언장을 설계할 수 있다. 이는 기존 법률 서비스로는 어렵거나 비용이 높았던 부분이다.

위험성 – 위조, 해킹, 법적 무효 가능성

가능성이 있는 만큼, AI 유언장에는 심각한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법적 효력의 불확실성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유언장이 법적으로 유효하기 위해서는 ‘자필 서명’, ‘공증 또는 검인’, ‘정신적 상태의 확인’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생성한 유언장은 문서의 진정성이나 사용자의 의사 확인 과정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속 분쟁 시 무효화될 위험이 크다.

또한, 보안 문제도 심각하다. 유언장이 저장된 AI 시스템이 해킹될 경우, 자산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거나 내용이 변조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사생활 침해를 넘어, 재산 자체의 분실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리스크다.

마지막으로, 위조의 가능성이 AI 유언장의 본질적 취약점이다. 음성 합성, 필체 복제, 영상 딥페이크 기술이 결합될 경우, 유언장 전체가 조작된 문서임에도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유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법적 공방이 장기화될 수 있다. 기술적 편의가 인간의 마지막 뜻을 왜곡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 활용 사례와 시장 동향

AI 유언장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점차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Trust & Will, Cake, Tomorrow 같은 스타트업이 챗봇 기반 유언장 자동 생성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사용자는 간단한 질문에 응답하는 것만으로 유언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이들은 생성된 문서를 PDF로 제공하고, 전자서명 또는 인쇄 후 공증까지 연계하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의 특성상 ‘디지털 상속’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일부 법률 플랫폼은 AI를 활용해 고인의 SNS, 클라우드, 암호화폐 목록을 정리하고 자동 분배 안까지 제시하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특히 정부와 연계한 공공 서비스 도입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법률 테크 스타트업 중심으로 클라우드 유언장, 상속 정보 관리 플랫폼이 등장하고 있으며, 금융기관이나 보험사와의 API 연동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다만,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AI 유언장의 법적 효력 확보 여부가 시장 성패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유언장을 위한 올바른 접근법

AI로 작성된 유언장이 실제로 상속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사용자 또한 단순히 기술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선, 사용자는 반드시 기존의 법적 유언장과 병행하여 AI 유언장을 보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AI 유언장의 원본은 오프라인 서명 문서로 출력해 공증을 받는 절차와 연계되어야 법적 분쟁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아울러, AI 유언장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사용자의 생체 정보 인증이나 블록체인 기반 서명 기술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이는 위조와 변조를 방지하고, 유언자의 최종 의사를 명확히 기록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기술이 ‘의사 표현의 보조 수단’이지, ‘법적 결론’의 대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AI는 정보를 정리하고 문장을 생성할 수 있지만, 인간의 감정, 판단, 가족 간 신뢰는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다.

디지털 유언장은 미래의 새로운 유산 관리 방식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의 뜻’을 왜곡하지 않도록 사용하는 것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디지털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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