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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디지털 유산 개념 및 정책

인간의 흔적은 어떻게 온라인에 남는가: 디지털 초상화

 디지털 초상화란 무엇인가? – 온라인에 남는 우리의 정체성

사람은 죽음을 맞이해도, 온라인에 남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흔적은 종종 디지털 초상화(Digital Portrait)라는 개념으로 정리된다. 디지털 초상화는 단순한 프로필 사진이나 게시물이 아니라, 사용자의 말투, 표현 방식, 좋아요를 누른 콘텐츠, 댓글, 사진, 영상, 검색기록까지 포함하는 디지털 정체성의 총체를 의미한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행 사진, 유튜브에서 좋아요를 누른 영상, 블로그에 남긴 글, 이 모든 것이 내 의도와는 별개로 인터넷 어딘가에 남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디지털 캐릭터’를 만든다. 구글 검색창에 내 이름을 입력했을 때 나오는 결과는, 실질적인 내 삶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은 그걸 나라고 믿는다. 그게 바로 디지털 초상화의 무서운 점이다.

이 개념은 최근 몇 년간 디지털 유산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단순히 사진 몇 장이 남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 생각까지도 디지털 데이터 속에 일부가 보존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초상화는 현대인의 삶에서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나를 대신해 존재하는 하나의 정체성이다.

 

남겨진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 디지털 유산과 소유권의 경계

사람이 사망했을 때, 그가 남긴 집이나 재산은 상속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던 구글 계정, 페이스북 사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누가 관리하고, 누가 소유하게 될까? 디지털 유산의 개념은 여기서부터 복잡해진다.

디지털 초상화는 실물 자산이 아닌 ‘정보’로 분류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플랫폼은 "계정 비공개 정책" 혹은 "사후 삭제" 조항을 가지고 있어서, 유족이 해당 정보를 열람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심지어 국내 플랫폼조차 법적 상속권과의 연결이 불분명하다. 카카오나 네이버, 구글은 모두 사용자가 생전에 사전 설정을 해놓지 않으면, 사망 후 해당 계정을 복구하거나 열람하는 데 상당한 제약을 둔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디지털 흔적은 결국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남겨지는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삶을 구성한 기억, 감정, 생각의 일부가 삭제될 수 있다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온라인에서의 ‘죽음’ – 사후 계정의 사회적 의미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마지막 사진이 올라온 지 3년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그 계정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대부분은 그 계정이 비활성화되었거나, 사용자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리고 그 계정은 일종의 온라인 묘비처럼 남는다. 이처럼 온라인에서의 ‘죽음’은 물리적인 죽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와 상호작용한다.

페이스북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추모 계정(Memorialized Account)” 기능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사망했음을 입증하면, 해당 계정은 ‘기억 속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그 안의 사진, 글, 친구 목록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더 이상 로그인은 불가능하다. 유족은 일정 수준의 접근권한을 부여받지만, 완전한 소유권은 가질 수 없다.

구글 역시 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통해, 계정 비활성화 시 타인에게 데이터를 넘길 수 있는 설정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전에 사용자가 직접 설정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즉, 디지털 초상화는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다.

 

우리는 왜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가? – 인간의 본능과 연결된 기록 욕구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돌에 이름을 새기거나,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그것을 실현했다면, 현대인은 블로그 글쓰기, SNS 업로드, 유튜브 영상 제작 같은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다. 이 모든 행위는 ‘기억되고 싶다’는 감정에서 출발한다.

디지털 초상화는 이 욕구를 가장 현대적으로 반영한 개념이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삶의 시간을 온라인에서 보내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 또 그 속에서 죽는다. 온라인 흔적은 곧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되고, 그 흔적을 지우는 행위는 존재의 부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과거에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해 온 적이 있다. 지금은 잊혔지만, 그 블로그엔 내가 어릴 때 느낀 감정, 좋아했던 노래, 슬펐던 날의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당시의 나를 기억하는 유일한 증거이자, 디지털 유산의 가장 개인적인 형태였다.

이처럼 사람들은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연장선’을 만들고 싶은 본능에 따라 디지털 흔적을 쌓아가고 있다.

 

디지털 유산,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 실천 가능한 가이드

앞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보면, 디지털 초상화는 준비하지 않으면 ‘우연에 맡겨지는 유산’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고, 정리하고, 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구글의 사망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 설정이다. 이 기능은 일정 기간 계정이 사용되지 않으면, 사전에 등록한 이메일로 알림을 보내고, 이후 지정한 사람에게 데이터 접근 권한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방식이다. 매우 간단하게 설정 가능하며, 데이터 삭제나 백업 중 선택도 가능하다.

그다음은 중요한 계정에 대한 정리 목록 작성이다. 비밀번호 자체를 공유하지 않더라도, 유족이나 지인에게 계정 목록이나 플랫폼 종류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좋다.
또한 사진, 영상 등 감정적인 유산은 클라우드 + 외장하드 + 실물 저장소로 다중 백업하는 것이 안전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준비가 내 존재를 기억해 주는 방식이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는 점이다. 디지털 유산은 단순히 데이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살았던 삶을 온전히 마무리하는 의식이자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디지털유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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